6월8일 임마리는 본인의 개인통장으로 기금을 가져간 후에 6월9일 시애틀 대표와 딜을 하고 있었다.
시애틀 대표는 이들의 경악스런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시애틀 대표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임마리가 6월9일 기금 참여자들에게 공지한 내용에 내용에 주목하자 :
열린공감 팀 강진구 기자 이하 분들이 이 일을 해결하고 한국 언론의 정상화/개혁추진을 위해 미국으로 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6월8일 기금을 가지고 간 다음날 6월 9일 이미 시탐사와 임마리, 이혁진 부부는 서로 향후 계획을 상의했다는 이야기다. 이 내용은 시탐사가 6월12일 기금을 한국으로 가져가자마자 방송에서 발표한 시탐사의 시민포털 추진계획 발표와 연결될 수 있는 발언이다.
즉 이혁진은 시탐사가 추진하겠다는 시민포털을 미주쪽에서의 일은 자신이 맡아서 하기를 바랬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다. 이혁진이 교포들에게 초기에 흘리고 다니던 카톡메시지에 이 언급과 관련된 내용들이 있었다.
아래의 증거자료에서 보면 이혁진부부는 기금에서 추가로 10,000불을 자신들에게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시애틀 대표는 이를 수용해서라도 기금을 시애틀로 옮겨서 참여자들에게 반환을 해 주려고 했으나 이 약속을 깨고 시탐사로 이혁진부부는 돈을 보냈다.
이들은 정천수가 사용한 경비 17000불 정도를 포함한 100% 반환을 더탐사가 약속했기때문에 한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더탐사의 미주교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면밀한 반환방법 검토없이 한국으로 가지고 간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냈고, 한국법상 합법적 반환방법을 찾지못해서 편법으로 반환을 하거나, 임마리에게 되돌려 보내서 반환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다.
정천수가 주장한 내용만으로 해석하면 :
임마리가 기금에서 추가로 10,000불을 더 요구하는 증거
시애틀 대표는 임마리를 달래서 시애틀로 기금을 보내게해서 참여자들에게 반환을 해 줄 계획을 잡고 임마리와 대화를 시도했다. 사용된 기금은 시애틀 대표와 고액기부자가 부담하기로하고, 참여자들에게 100% 환급을 계획하였다. 시애틀 대표는 6월8일 밤에 Wells Fargo 신규 account를 열어서 임마리에게 알려주었다.
이혁진은 무료봉사로 시민포털 설명회를 지원한 것으로 미주교포들은 알고있다. 대신에 정대표가 설명회에서 그의 명예훼복을 위해서 열심히 그에게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게 도와주었다.
그런데 임마리는 기금을 가져간 후에 이혁진의 급여 5,000불을 요구했다.
임마리는 얼바인에서 산호세로 이사를 했다. 정피디 말에 의하면 임마리 딸의 학교문제로 이사를 했다한다. 정피디가 임마리 얼바인 집에 처음 도착한 날은 5월9일이다. 그리고 5월17일 임마리가 이사갈 산호세 집으로 이동하였다. 이 집을 이사하는 것이 시민포털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이사비를 요구하나?
은행 계좌 분석과 임마리가 제공한 증거자료 및 증언을 해석하면 :
임마리가 기금에서 추가로 10,000불을 더 요구한 것을 수용한 시애틀 대표와의 협의를 깨고, 임마리는 정천수가 사용한 17000불정도의 기금을 포함한 100% 환불을 약속하는 더탐사로 기금을 보냈다.
계좌분석에 의하면 기금을 임시로 임마리 계좌로 옮겼다가 다시 정천수와의 공동계좌로 되돌려놓고나서
공동계좌에서 한국의 열린공감 페이팔계좌로 송금하였다.
정천수의 기금 인출 요구와 관련하여 한국어 통역 은행원이 임마리에게 전화를 했다. 정천수와 권혁의 말이 다르고, 개인돈이고 한국에 가니 다 인출하고 클로징하려고 했다며 임마리가 사실을 알고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교민들이 웰스파고 은행에 연락하여 인출 당일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하였고, 은행에서는 그 날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만 대답을 해줬다. 은행 규정에 의하면 공동계좌 인출요구시 누가 요구를 하든지 인출을 해주게 되어있다. 정천수의 인출요구에 왜 임마리에게 연락을 했었는지 의문을 가졌었다. 9시 인출시도에서는 권혁의 영어가 부족하여 텔러와 대화가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되고, 4시 인출시도에서는 은행측이 한국인 통역이 있는 곳으로 정천수를 오게하였고, 정천수와 권혁 각각에게 따로 질문을 하였고, 각각의 말이 달라서 은행측에서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공동계좌의 또다른 주인인 임마리에게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 한 것으로 보인다.)
임마리는 그 돈은 정천수씨 개인돈도 제 돈도 아니다고 대답하고, 임마리가 전액 송금해도 법적문제가 없는지 은행원에게 확인하고 자기가 기금을 지키겠다하고 기금을 임마리 개인통장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해당 돈의 흐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임마리가 기금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임마리 입장에서 5월8일 12시까지 본인에게 자료정리등의 일을 시켜놓고, 당일 4시에 자신 몰래 기금을 인출하려 했고 계좌를 클로징하고 한국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천수에게 뒷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기금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얼바인에서 산호세로 이사를 한 이유는 딸의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닌 정천수의 시민포털 사업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혁진이 정천수에게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딸교육때문에 이사하는 것처럼 둘러대기는 했다고 한다.
5/3일 정천수가 미국으로 온 뒤에, AI기술을 가지고 계신 교포 사업가등을 만나면서 시민포털 사업의 가능성을 크게보고 기대감이 커졌고,
이혁진이 펀딩, 기술인력, 기업등의 인적네트워크 등을 고려하여 실리콘벨리가 있는 산호세 지역으로 이사갈 것을 주장하여, 급하게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했다고 한다.
이틀만에 집을 알아보고 5월10일 계약서를 작성하고 5월15일부터 정식 거주예정이었고, 5월17일부터 산호세 집에서 이혁진, 정천수가 먼저 거주를 시작했다.
임마리는 6월3일부터 산호세 집에서 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정천수를 위해서 본인들의 이사계획보다 2주정도 입주 일정을 당겨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임마리는 원래 산호세에 20년정도 거주를 했었고, 딸아이 교육 및 그들 가족의 새로운 환경이 필요해서 얼바인으로 이사를 했고 1년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딸이 펜싱을 하고 있고 근처에서 펜싱을 할수 있는 좋은 환경의 학군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산호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산호세로 이사를 했고 현재는 딸이 펜싱 훈련을 위해서 1시간30분이 떨어진 곳까지 다니면서 운동을 하는 불편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혁진, 임마리 부부의 싸움의 원인은 정천수와 시민포털과 관련하여 가족의 희생이 강요되는 부분에 대한 임마리의 불만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혁진은 자기일을 그만두고 급여없이 정천수와 함께하고 있었으며, 딸은 학교 이전에 따른 불편을 겪는 상황이 생겼고, 임마리는 정천수와 한 집에서 있으면서 식사 및 빨래등을 해줘야하는 불편한 상황들이 생기면서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임마리의 증언에 의하면 정천수가 이들 부부에게 지분을 줄 것을 처음에는 약속을 했고, 북가주로 이사가면 임마리 월급도 올려준다고 했다한다. 주식을 이혁진에게 20프로, 임마리에게 20프로. 정천수는 60프로 배분을 약속했다한다.
그래서 이들 부부가 시민포털에 올인한다는 심정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시민포털의 성공을 위해서 함께하기로 한 것이고, 산호세로 이사결정을 하였고, 이혁진은 정천수를 따라서 무료봉사로 시민포털 설명회를 따라 다닌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혁진은 이 과정을 통해서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임마리는 처음에는 시애틀 대표에게 반환을 나눠서 하는 것을 제안했다.
Wire(은행송금), Cash(현금), Checks(수표)로 내신 분들은 시애틀 대표가 반환하도록 하고
Venmo, Zelle, Palypal 등은 임마리가 반환하도록 약속을 한다.
추가 요구한 10,000불 포함 총경비는 27,808.49이다. 대략 총 기금의 15%이다.
그런데 이혁진이가 개입을 한다. 시애틀 총기금에서 15% 제외하고 시애틀 기금만 시애틀로 보내겠다고.
이혁진은 이 기금의 방향을 결정할 그 어떤 결정권한이 없다. 그런데 개입을 했다.
시애틀 대표는 임마리와의 협의로 총 기금중 Wire, Cash, Check 로 내신 분들의 반환을 담당하고자 했고, 그 기금의 15% 경비를 제외하고 138,059.43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혁진이 이에 “동의못합니다”라며, 방향을 틀어서 시애틀 총기금의 15%경비 제외한 금액만 시애틀로 보내겠다고 바꿔버린다.
이혁진은 이 기금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은 처음부터 없었다.
뿐만아니라, 시민포털 관련 일에서 정대표의 결정에 의해 6월5일 최종적으로 퇴출이 되었다.